자, 가자- 출근이다. 일상난잡


주말의 다른 시프트 메꿔주기라는거, 잠을 많이 자지는 않아도 안 자면 고생하는 내 체질로서는 그야말로 서든데스가 아닐 수 없었다. 덕분에 지난달 중순쯤 한번 감기로 고생한 이래 최악의 몸살을 만나서 오늘은 퇴근하기가 무섭게 밥도 먹지 않고 그냥 내내 누워만 있었다.

좀 씻고 푹 자면 나아지려니 했는데 아파서 자는 내내 잠도 깨고 열도 올라오는지 침대를 땀으로 왕창 적시기만 해서 불쾌했다. 시시각각 라인으로 다시 돌아가야 된다는 불안감이 자꾸 날 깨게 했고 지금 이 일기를 쓰는 시점에서도 앞으로 약 한 시간 뒤면 라인 투입이다. 이전 시프트때는 본 근무시간 끝나고 잔업이기에 어떻게든 잔업이라도 빠질 수 있는 구조였지만 이번에는 먼저 출근해서 잔업을 때운뒤 본 근무시간에 들어가는 시프트라 빼 달라고 할 수도 없다. 더구나 주말에 쉬는 인원들을 메꿔주기 위해 딱 맞게 잔업을 조정한거라 방법이 전혀 없지 않은가...

학교 다닐때는 아파도 근성으로 등교하고 근성으로 수업 전부 다 들었지만 역시 내가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는 아주 작은 일말의 힘이라도 날 움직이게 했는데 그렇지 않아도 좋아하지 않는 일을 아파서 몸도 못 가는 와중에 하려니 더더욱 괴롭고 하기 싫은 것이다.

이렇게 아파 죽겠지만 그래도 난 오늘 일을 한다. 가자, 출근이다.

by. Sterlet.

아놔 시박 돈 필요 없다고. 더구나 또 특례병은 한달에 단 하루 휴무야!;

입장의 차이. 일상난잡


불과 보름쯤 전에 IXYS社 웨이퍼의 트랜지스터 칩 코팅을 했었는데 2주 정도밖에 안 지나서 또 5.3k정도의 물량이 들어왔다. 그것도 이번에는 E.R. 디바이스가 아닌 양산품임을 뜻하는 노란색 Lot Card로. 247 패키지의 칩 코팅을 할 줄 아는 작업자가 나밖에 없어서 또 코팅 오퍼레이션으로 투입. 기껏 S/W 시프트로 빠져서 잔업이 줄게 되었는데 코팅 마칠때까지 풀 잔업 확정. 이래 치이고 저래 치이고 답이 없는 특례의 나날은 끝없이 계속 지속.

코팅액을 교반하며 불과 보름만에 다시 가동하게 된 코팅 설비를 세척하고 있자 지나가던 과장님이 또 코팅하냐 - 하시길래 이 일도 8달 뒤면 끝난다고 했더니 벌써 그렇게밖에 안 남았냐고 놀라시며 빨리 새로이 코팅 오퍼레이션을 배울 작업자를 찾아야겠단다. 난 진짜 지겹고 괴로워서 8개월씩이나 남은 것 같은데 조장님이나 과장님은 8개월밖에 안 남았냐고 아쉬워 하신다.

[매일 나갈 날이나 세고있냐고 핀잔 들었던 것은 둘째치고]

와이어 본더 오퍼레이션보다는 코팅 오퍼레이션을 볼 때가 좀 더 마음이 편하고 아무도 터치 안하니 속 상할 일도 없지만 그래도 전일잔업이 확정되는데야 반가울 리가 없다. 설상가상으로 11월 물량이 10월 물량에서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오늘 Inform 시간에 공지. 추워지면 추워질수록 물량 줄어든다고 한 놈 누구냐? 이렇게 물량싸움만 하고 속 다 버리고 성질 더러워진 뒤에야 병역특례질 끝날라나 어떨라나 모르겠다.

그래도 주말까지 못 끝내면.
주말에 시프트 메꿔주기는 없을지도 모르는 뜻이려나.
근데 남은 양이 너무 애매해서, 평일 안에 다 끝내기는 많고
주말까지 끌기에는 양이 너무 적다.

by. Sterlet.

적금이 끝났다. 일상난잡


작년 7월부터 시작해서 15개월간을 쏟아부어오던 적금이 끝났다. 그 외로 푼푼이 모은 용돈이라던가 합쳐보면 거의 돈 천 만원 가까운 예금을 획득. 이걸로 일단 공부할 밑천은 대강 만들었다. 학비야 뭐 장학금 받으면 되니까 굳이 신경 쓸 것은 못 되고, 지금까지 모은 적금은 그저 복학한 이후 연수나 교환학생용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위해서 모은 돈.

생각해보니 특례를 시작한 것도 결정적으로 이놈의 적금 때문이었다. 국립대에다 지방대를 다니는 탓에 학비가 많이 들어가지는 않았고 그나마도 대부분 장학금으로 때웠으니 학비 걱정은 하지 않았지만 그만큼 학교 간판이 따라주지 않는 탓에 내 자신의 스펙을 쌓기 위해 유학이나 교환학생은 필수적이었다. 그러나 장학금을 받지 않으면 대학교에 진학할 수 없었던 내가 천만원 내외는 족히 들어가는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지원할 금전적 여력이 있을 리 없었고, 결과적으로 내가 공익근무 대신 병역특례를 지원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작년 7월 말일부터 매월 50만원씩 적금. 750만원의 원금과 30만원여의 이자를 확보했다. 거기에 가외로 모은 용돈 140만원 정도를 포함하니 920만원 정도. 앞으로 특례기간이 8개월 정도 남은 만큼 이전보다는 좀 더 적은 액수의 적금이라도 한 두개 계속 돌리려고 한다. 유학비는 이제 끝났으니 앞으로 모으는 돈은 그저 내 미래에 있을 또다른 지출의 대비와 경험을 쌓기 위한 여행 자금으로 모으고 싶다.

문제가 있다면 - 특례를 꼭 해야만 했던 선결과제 하나를 끝내고 나니 이후로 버는 돈은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만큼 일하는게 싫어진다는 뜻이기도 한 거다... 꼭 벌어야 되는 돈도 아닌데 아직 특례가 끝나려면 멀었고 울며 겨자먹기로 억지로 회사다녀야 된다는게 참 문제라면 문제. 그래도 그 긴 10월도 가고 어느 새 11월인가.

...

11월은 교대 시프트가 Swing으로 옮겼다. 매일 오후 2시부터 밤 10시까지. 잔업이 많이 줄게 된 것은 다행이지만 주말에 다른 시프트의 근무자들 대신 출근해야 해서 출근 시간이 계속 변한다는 엄청난 단점이 있다. 난 기본적으로 잠 자는 시간을 변화시키는데 적응이 힘들어서 잔업을 더 하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S/W 시프트로 가고싶지는 않았는데 이거야.

...10분 뒤 11월달 첫 출근이다.
아따 11월 되자마자 쌀쌀해졌구만.

by. Sterlet.

근데 이렇게 적금통장은 빵빵해졌는데.
왜 난 여전히 그지같은거지[...]

끝나지 않는 반도체질 : Unlimited Semiconductor Works 안티테제


하고 많은 날 중에서 단 오늘은, 진짜 오늘만은 너무 잔업을 하고싶지 않았다. 아무리 지난 주에 실컷 쉬었다고 해도 엊그제부터 조금씩생기기 시작한 피로가 누적되면서 머리는 빙빙 돌고 정신은 오락가락하는 와중에 잔업을 하라고 하니 진짜 미칠 지경. 내일 잔업할테니까 제발 오늘은 빼 달라고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진짜 이건 아닌데, 병역만 아니라면 내가 이러는게 아닌데 - 하는 생각이 일하는 내내 빙빙 머리속을 맴돌고 속은 조금이라도 설비들 다 때려부수고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끓어올랐다.

하지만 현실의 나는 그저 하라는 대로 풀이 죽어 윙윙 돌아가는 설비들과 싸우고 있을 뿐인 나 자신... 그나마 좀 설비 넉넉하게 보던 외국인들이 조금씩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미쳐버렸을지도 모른다. 확실히 내게 있어 08년부터 10년까지 이어지는 요 3년간은 얼마 길지 않은 내 생에 있어 가장 괴롭고 가장 최악이었던 날들로 기억될 것이다.

내게 고교 3년을 생각해보자면 그렇게 반짝거리고 멋지게 보내던 때가 또 없었다고 기억하는데 나름대로 그 시절에는 힘든 점도 있었겠지. 하지만 똑같은 거진 3년인데도 이 3년간은 파멸로 치닫는 기억밖에 없었다는게 차이라면 차이랄까. 그 사이에 끼었던 대학교 1년간은 사실 아무것도 모르던 때였던 것 같다. 진짜 이 짓만 끝나면 뭔가 어떻게 될 것 같은데. 무엇이든 다 해결되고 내가 닿기 위해서라면 다 닿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날이 오긴 올까.

...

기대와 다른 모습이었어도 언제나 내가 바랐던 날은 반드시 돌아왔다. 그 사실마저 잊어버린 것은 아니지만 그 사실이 현재 진행형일때는 늘 까마득히 와 닿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지금 나는 오늘 일기에서, 앞으로 특례가 끝나고. 지금 내가 벌어둔 미래에 대한 여유를 향해서 미래 내 모습의 사과와 고마움에 대한 인사를 요구한다.

언제인지는 몰라도 이 '내'가 특례가 끝난 시점에서 이 일기를 읽게 된다면 지금의 나를 결코 잊지 말라. 이 내가 지금 이 시절에 피땀흘려 얻은 미래에 대한 가치와 능력에 고마워할 줄 알라. 이렇게 힘든 시절도 있었기에 내가 미래 속에서 계속 공부할 수 있음을 고맙게 생각하길 바란다.

잊지 말라. 나는 지금 이 때의 내가 있기에 성립할 수 있었다.

...

매일같이 깨닫는 것은. 아무리 현재가 시궁창 같아도 화려했던 과거보다는 낫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시궁창같은 미래라도 그렇지 않은 오늘보다는 낫다. 적어도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나보다는 아주 조금씩이지만 그만큼이라도 더 성장한 나일테니까. 지금 나는 이러한 단순한 사실을 내일이 될 수록 특례가 하루하루 줄어든다는 사실에서 깨닫고 있지만 지금 이렇게 일하면서 깨닫는 사실은 특례 이후의 내가 보다 돈오에 근접하게 되는 실마리가 되게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부디 잊지 말라. 내가 지금 사는 미래가 시궁창 같아도 내일은 아주 조금씩이라도 더 낫다.

by. Sterlet.

D-265. 영원히 닿지 않을 것 같은 요 9달여.

나무그늘의 카모마일 차. 사나이의 요리


나는 무제한 제공같은 것에 약한 편이긴 한데 나무그늘의 무제한 빵은 그저 버터를 다 발라 먹을 정도만 가져와서 남김없이 먹는다. 식빵과 바게트 기준으로 두 세 조각 정도. 최근 시간을 죽이거나 노트북으로 군대 간 친구 대신 블로그 포스팅을 해 주기에는 민토보다 나무그늘이 더 싸게먹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후로는 여기 자주 와서 그냥 이냥저냥 시간을 때우고 오곤 하는 것이다. 조용히 차 마시며 책 읽기에는 좋다.

점심으로 2000원짜리 편의점 도시락 하나 먹고 4-5천원 하는 나무그늘 차 마시고 있는다는 사실에 내가 굉장한 된장남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기도 했지만.... 어...음... 생각해보니 난 된장남 맞는 것 같긴 해. 근데 생각해보면 난 커피는 [못 마시는거지만] 안 마시기도 하고 차와 빵이 리필되는 장점때문에 자주 나무그늘에 앉아있는건데 굳이 그렇게까지 생각하는건 자격지심같기도 하고.

그래도 나 이전에 술값에 돈 쳐들이던거 생각하면 뭐... 바에서 칵테일이나 보드카 청하면 비슷하거나 더 비싼 돈이 잔마다 휙휙 날아갔잖아. 그거 생각하면 최근에 들이기 시작한 차 마시는 취미도 썩 나쁘지는 않구나 싶어. 술마시고 위장 걱정하거나 하기보다는 좀 더 시간을 즐긴다는 실감이 들어서. 술 마시면서 시간 죽이는 것도 괜찮긴 하지만 술과는 다른 향기가 있어.

...

최근 자주 마시는 차는 케모마일, 캐모마일이라고도 하는 카모마일 차. 개망초 비슷하게 나는 작고 덧없는 꽃을 모아다 말려서 차로 마시는 것이다. 국화를 닮은 [실제로 국화과다] 그 작은 꽃이 박하 비슷하기도 하고 사과 비슷하기도 한 산뜻한 향기를 차에서 내내 풍기는데 이 향기가 참으로 강해서 찻집을 나선 뒤에도 내 혀와 코, 그리고 인상에 계속 박혀있는 것이다.

이 작고 덧없고, 향기마저 덧없을 망정 강렬한 느낌을 가진 꽃의 꽃말은 '고난속의 힘' 추운 날을 견디며 햇볕 아래 피어나는 덧없어도 강인한 꽃에 붙여진 꽃말이다. 그와 동시에 이렇게 힘든 일상을 버텨내는 최근의 나에게도 또한 더없이 어울리는 강인한 향기가 아닌가.

...

꼬여서 우연히 생긴 며칠간의 휴가도 끝.
내일부터 다시 지옥의 시작이다.

아직 뇌리에 남은 카모마일 향의 인상이 날 버티게 할 수 있기를.

by. Sterl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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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도 못지않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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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난 살아간다.